- 저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 출판
- 열린책들
- 출판일
- 2015.10.20
나이를 먹을수록 미련이 커진다.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이라는 회한은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커져 현실을 잠식할 때도 있다. 어린 왕자가 장미와의 관계에서 느낀 뒤늦은 후회는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나의 후회들을 다시 들춰보게 했다.
어린 왕자와 장미와의 관계는 첫사랑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는 것 같다.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장미는 어린 왕자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까탈스럽게 굴며 어린 왕자의 시선을 끈다. 어린 왕자는 당황스럽지만 장미의 말을 모두 들어준다. 그렇게 서로에게 내어주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길들여진다. 그런데 문득 어린 왕자는 일방적으로 장미에게 다 내어주고 손해 보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들면서 떠나길 결심한다. 한편 장미는 그제야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지 않는다. 장미를 소행성 B612에 두고 어린 왕자는 여행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지구에 도착했을 때 아마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우를 만나고 난 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자기 별을 잠식해 버리는 바오바브나무를 쉽게 제거할 생각에 화자에게 양 그림을 부탁했지만, 그 양이 장미까지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장미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후회하고 있던 찰나에 장미의 목숨마저도 위험에 빠트릴 수 있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견디지 못하고 어린 왕자는 결국 죽음을 택한다.
그는 많은 친구를 만나고 사귀는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마치 우리가 예전에 최대한 많은 나라의 유명장소에 발을 찍고 오는 것이 알차고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관계라는 것이 그냥 뚝딱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친구’라는 단어가 그 값을 제대로 하려면 시간과 마음을 들여야 하고 가랑비에 옷 젖듯 서로에게 스며들어야 한다. 그러는 동안 매번 좋은 일만 일어날 수도 없고, 실망도 하고 갈등도 있어야 한다. 좋은 것과 나쁜 것 모두를 내가 감당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기엔 어린 왕자는 너무 어렸고 경험이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사랑에 실패하는 이유이고, 그 시절의 실수는 지금이라면 다시는 하지 않을 실수이다. 그땐 정작 자기들이 무얼 찾는지도 모른 채 무조건 빨리 가려고 급행열차를 타는 사람들처럼 어딘가에 쫓겼고 앞을 내다볼 수도 없었다.
무조건 가족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던 나는 어리석게도 결혼을 그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평범한 가족으로 보이기 위해 좋아하지도 않던 아이도 낳았다. 만약 내가 내 인생을 담보로 탈출을 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다가 떳떳한 독립 했더라면? 설사 결혼을 했더라도 내가 원하는 바를 확고히 했더라면? 이 의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묵혀지고 변질되어 쓸모없는 미련이 되었다. 이 생각들에 잠식될 때면 나의 지독한 어리석음에 가슴을 치고 지금의 현실에 반감만이 가득해진다.
어린 왕자 자신은 장미에게 좋은 친구가 되지 못했지만 화자에게는 좋은 의미로 남고 싶어 한다. 나 역시 내 인생은 실패로 점철되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겠지만 나의 이기심으로 얼떨결에 태어나버린 내 아이들에게는 좋은 것들을 많이 알려주고 싶다. 나는 몰라서, 혹은 알지만 끓어오르는 치기에 저질렀던 많은 실수들을 알려주고 싶다. 물론 그들도 알면서도 하는 실수는 많을 것이고 후회도 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누군가 귀띔을 해줬다는 자국만으로도 그들의 인생은 나와 다를 것이다. 미련에 갇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인생이 아니라 그걸 발판으로 앞으로 나가는 인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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