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의 이야기

콜리는 용감했고 나는 비겁했다.

새벽무사 2025. 4. 18. 14:09
 
천 개의 파랑
SF가 진보하는 기술 속에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예견하는 장르라면, 『천 개의 파랑』은 진보하는 기술 속에서 희미해지는 존재들을 올곧게 응시하는 소설이다. 발달한 기술이 배제하고 지나쳐버리는 이들, 엉망진창인 자본 시스템에서 소외된 이들, 부서지고 상처 입은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이들을 천선란은 다정함과 우아함으로 엮은 문장의 그물로 가볍게 건져 올린다. 그의 소설은 희미해진 이들에게 선명한 색을 덧입히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락사당할
저자
천선란
출판
허블
출판일
2020.08.19

 


나의 마음 한 구석엔 아직 순수함이 남아있는가.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니오.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고 무엇을 가져다주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연재는 대답하지 못했다. 연재는 로봇을 좋아하는 학생이지만 기술의 혜택과는 먼 삶을 살았고, 오히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무언가를 빼앗긴 삶을 살았다. 현재 연재의 언니 은혜는 막대한 비용으로 인해 기술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고, 과거에는 과학 기술에 밀려 인간을 소홀하게 대했던 그 틈에 아빠를 잃었다. 아마도 자신의 현실과 이상적인 답변 사이의 괴리가 크기 때문에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현실의 벽을 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재의 그 마음과 호기심이 결국 콜리를 다시 깨웠고 콜리는 투데이를 안락사 직전에서 구해내 마(馬)생 제2막을 살게 해 주었다. 마음과 의지가 현실의 벽을 무너뜨렸다.

 

 이 책은 로봇을 소재로 한 과학소설이지만 살짝 차용만 했을 뿐 철저히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소설이다. 이 작가의 소설이 재미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랑과 나의 사막’이라는’  다른 소설도 읽어본 적이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도 유행이 지난 오래된 로봇이고 지금으로부터 먼 어떤 미래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콜리와 같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생각과 마음을 지닌 로봇이 존재하고 그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 작가는 때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끝까지 변질되지 않는 존재로 로봇을 택했다. 더 이상 인간 안에서는 순수 라는 개념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지구에서는 동물이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공간과 자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심은 지구의 동식물을 죽이고 있으며 결국엔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벼랑 끝에서 작은 희망을 꿈꾼다. 아직은 어딘가에 남아있을 인간성과 순수함이 작은 기적으로 발현되길 바란다. 나는 글 속에서 작가의 순수함이 반짝하는 순간을 발견했다. 

 

 이틀 이건 2주 뒤이건 간에 어차피 투데이의 결론은 정해졌다. 이 글의 처음 물음에 대답했듯, 이미 생각과 마음이 닫힌 나에겐 투데이의 안락사를 며칠 미루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결론은 바꿀 수 없다고 단정지었고 두 개의 조건에 대해 계산기부터 두드리고 있었다. 한편 연재와 은혜, 복희, 콜리는 계산하지 않았다. 현재 내 옆에 있는 투데이가 중요했고 지금 행복한 투데이만 보였다. 자신들의 결정과 행동으로 어떤 댓가를 바라지도, 미래를 함부로 점쳐보지도 않는다. 결국 그들의 순수함은 바꿀 수 없었던 결론마저도 없던 일로 바꾸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심지어 콜리는 투데이의 행복을 바라는 그 마음을 한 치의 계산이나 머뭇거림 없이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나에 대한 수치스러움과 콜리의 선택을 존경하는 마음이 들면서 저절로 눈물이 났다. 나에겐 과연 콜리같은 순수함이 존재했던 적이 있었던가를 애써 찾아보려 해도, 작위적으로 지어보려 해도 할 수 없었다. 마른 땅에도 순수함의 씨앗이 날아와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이 세상에도 순수함이란 씨앗이 아직 존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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