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의 이야기

Limited Edition

새벽무사 2025. 4. 25. 14:27
 
트리갭의 샘물
수많은 독자와 비평가의 사랑을 받은 미국의 저명한 아동 문학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나탈리 배비트의 대표작 『트리갭의 샘물』이 윤미숙 작가의 현대적이고 세련된 그림으로 새로 단장하고 독자들을 다시 찾아왔다. 1975년에 발표된 『트리갭의 샘물(원제: Tuck Everlasting)』은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상, 미국 도서관협회 도서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을 받았고, 풍부한 상상력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미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필독서로 선정되어 현대 고전
저자
나탈리 배비트
출판
대교북스주니어
출판일
2018.09.05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일에 대해 우리는 그 어떤 확신도 가질 수 없기에 (물론, 신념에 따라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살아 있는 현재가 소중하다. 어떤 이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이기 때문에 그 시간 안에 뭐든 해야 한다. 한번뿐인 인생 폼나고 멋지게 살고 싶다. 시간이 유한하기에 실패로 버려지는 시간이 아깝다. 그래서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 실패 없이 빠르게 성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약간의 꼼수는 성공으로 가는 시간을 단축시켜주기도 한다. 결과만 좋다면 꼼수가 인생의 치트키가 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기에 해보지 못한 것, 가지지 못한 것에 아쉬움도 갖는다. 그래서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회한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어차피 인간은 죽기 때문에 사는 동안만 어떻게든 존버(존나게 버티다. 故 이외수 소설가가 자주 썼던 표현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 이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자세는 다양하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인간의 삶이 무한하다면? 이 가정에 눈이 반짝반짝 거리는 사람도 있겠고, 절망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겠다. 나는 어떤 쪽일까? 

 

  내가 듣고 봐왔던 ‘죽지 않는 자’들은 TV드라마에서 표현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들 대부분은 오랜 세월을 살아와서인지 축적해 놓은 부가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인 20대 후반~30대 사이의 외모에 멈춰있기에  비주얼도 훌륭하다. 또 삶이 곧 역사 교과서이기에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식과 지혜가 넘친다. 이런 조건이라면 누가 무한한 삶을 마다하겠는가. 물론 극 중에서 그들은 너무 오래 살았기에 삶이 무료하고 재미없다고 한다. 주위의 사람들이 죽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삶이 고통이기에 죽을 수 있다면 죽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적극적 공감이 쉽지 않다. 즉,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안다는 거다. 나는 공감을 못하는 것에 한 술 더 떠 그 영원의 삶을 동경했다. 시간이 무한정으로 주어진다면 해보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 다 해볼 수 있겠다는 희망 섞인 욕망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인간의 무한한 삶에 눈을 반짝거리는 쪽이다. 

 

 트리갭의 샘물은 내 마음 한쪽 켠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욕망’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내 욕망에는 여러 전제조건이 붙어 있는데 (훌륭한 비주얼, 막대한 부 등등) 여기에 나오는 매와 남편 터크, 아들 마일스와 제시는 나의 전제조건이 붙지 않는 영생이다. 트리갭 마을 숲의 샘물을 마신 시점부터 영생을 갖게 되는데, 그 시점이 각 각 중년, 스물둘, 열일곱이었다. 중년이면 이미 육체적으로 삐그덕 대는 나이이고, 스물둘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성인이고, 열일곱은 너무 어리다. 터질 듯 부풀어 올랐던 나의 ‘욕망’ 풍선의 바람이 살짝 빠졌다. 그리고 그들은 그다지 넉넉하게 살지 않았다. 여기서 바람이 좀 더 빠졌다. 집과 가구들과 소품들은 낡았고 지저분하다. 아마, 시간 남아 돌기에 삶의 긴장감이 떨어져 ‘에이, 내일 하지 뭐, 다음에 하지 뭐’ 하는 게으름이 쌓여 이런 풍경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무한한 시간을 대하는 가족 구성원의 태도가 각기 다르다. 이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된 열 살 아이 위니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떠돌아다니며 살아야 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현하자 매는 이미 해탈했다는 듯이 “남편과 내겐 서로가 있지 않니, 그것만 해도 어디냐”라고 한다. 매는 자신에게 주어진 무한한 시간에 대해 축복이나 저주 같은 판단을 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인다. 그리고 주어진 삶을 그냥 열심히 살아간다. 매의 남편 터크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끝나지 않는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유한한 삶을 부러워한다. 마일스는 영생으로 인해 자신이 과거 꾸렸던 가정이 해체된 것에 미련을 가지고 살고, 제시는 어린아이답게 영생의 즐거움을 누리며 산다. 제시는 위니에게 같이 영원히 살자고 한다. 영원히 사는 삶은 꽤 즐겁다고 위니를 유혹한다. 

 세월이 흘러 현재 트리갭은 숲이 모두 사라지고 자동차가 다니는 도시화된 마을의 모습이다. 터커 가족은 위니를 찾기 위해 트리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은 위니의 무덤을 발견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여전히 마차를 끌고 다니면서 말이다. 

 

 그렇다. 위니는  시간이 멈춘 삶보다는 친구, 가족들과 함께 시간이 흐르는 삶을 선택했다. 난 드라마 같은 영생은 환영이다. 하지만 터커가족 같은 영생이라면 거절하겠다. 사람이 영생에 혹하는 이유는 죽음이 두려워서 일 수도 있지만, 인간의 보통 수명으로는 닿을 수 없는 꿈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커 가족은 영생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전혀 누리며 살고 있지 않다. 자신들의 존재가 알려지면 안 되기 때문에 떠돌이 생활을 한다는 점만 다를 뿐, 하루하루를 평범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아간다. 오히려 매일이 똑같고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기 때문에 삶의 절박함이나 의지, 발전 동기가 없다. 그들의 시간은 멈춰있다. 사실상 죽음과도 같다. 터커 가족에게 시간은 마치 대량생산된 중국산 연필 같은 존재일 것이다. 우리에게 시간은 Limited Edition이다. 한정판이 대량생산 되는 순간, 그 가치는 추락한다. 중국산 싸구려 연필에 어떤 이가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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